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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10/7] 연중 제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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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10-07 15:57 조회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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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2,18-24 / 히브2,9-11 / 마르10,2-16>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혼인을 하는 것은 판단력 부족, 이혼을 하는 것은 인내력 부족, 재혼을 하는 것은 기억력 부족”. 물론 그냥 웃자고 만든 말이긴 하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혼인의 의미가 점차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물론 집안과 집안이 만나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평생 서로에게 신의를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또 둘 사이에 태어나는 자녀를 함께 양육하기로 결심하는 혼인을 마치 물건 사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혼인의 참 의미, 특별히 우리 교회가 바라보는 의미를 올바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가톨릭 교리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삼위일체 교리라고 하지요. 요약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각각 다른 위격이시지만, 동일본질을 이루시는 한 하느님이시라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를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흔히 우리는 바닷물을 해변 한쪽에 있는 구덩이 옮겨 담을 수 없듯이, 삼위일체 신비를 우리 머리로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에 대한 영감을 주는 많은 설명들도 있는데, 그 가운데 제가 좋아하는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나요? 만일 누구든 자기 자신을 혼자서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르시시즘이라고도 하는 자기애에 빠졌다고 이야기하겠지요. 그러니 참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인격이 존재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인격이 서로 사랑하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좋은 열매가 거기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 때 그 열매는 남녀의 사랑으로부터 태어나는 자녀일 수도 있고, 두 사람이 사랑하며 맺히는 기쁨과 평화 등의 성령의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서로 사랑을 나누는 두 인격과, 거기에서 나오는 열매는 사랑으로 일치를 이룹니다. 강론 후에 우리는 우리 신앙을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으로 고백하게 될 텐데요, 거기서 우리는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신다고 기도합니다. 그 말은 바로 성부와 성자께서 나누시는 사랑의 친교로부터 성령께서 열매로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 어떤 우열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사랑 안에서는 어떤 우열도 없이 온전히 하나가 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이 세 위격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완전한 일치하는 삼위일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굳이 오늘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지상에서 삼위일체 신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혼인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혼인하여 모든 면에서 하나로 일치되고, 그로부터 태어나 양육되는 아이를 보노라면, 삼위일체의 신비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자녀가 없는 가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더라도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은 기어이 어떤 좋은 열매를 맺고야 맙니다. 사랑은 창조하는 힘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결혼하신 분들께, 그분들의 결혼생활이 사람들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달리 말하면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며 잘 살아 주시길 당부드리곤 합니다. 또 앞으로 결혼하게 될 청년들에게도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결혼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곤 하지요.


그래서 혼인은 단순히 사람들 간의 어떤 약속과 관습의 차원을 넘어,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 곧 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의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는 질문은 하느님 안에서의 혼인의 참 의미를 모르고 던진 질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 예수님의 단호한 대답은 거룩한 것을 하느님 안에서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으로 들어야겠지요. 물론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모두 상대를 한결같이 친절하게 대하지도 못하고, 유혹에 약하며, 서로에게 상처도 잘 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도록 혼인성사를 통해 혼인을 축성해주시도록 청하고, 또 끊임없이 필요한 은총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끝으로 실질적으로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원칙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잘 싸우시라는 겁니다. 화목한 가정은 안 싸우는 가정이 아니라 갈등을 잘 해결할 줄 아는 가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꾹꾹 눌러 참지 말고 잘 표현하고, 서로 갈등을 해결해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싸울 때 싸우더라도 상처가 되는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상처되는 말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고 하지요. 그러니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일수록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걸러서 말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서로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배우자는 하느님이 아니기에 완벽할 수 없지요. 더욱이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언짢은 일이 있으면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애초에 완벽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끝으로 두분이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협력자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하느님께서 사람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표현하시지요. 이것은 머리뼈를 써서 남자를 지배하게 하거나, 발뼈를 사용해서 남자의 지배를 받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둘이 협력자로서 나란히 걷기를 바라신 하느님의 마음을 전해줍니다. 특별히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을 같이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지요. 공동의 목표, 궁극적으로 하느님 사랑이라는 목표를 함께 바라보고 협력해서 걸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결혼하신 분들께 말씀드리긴 했지만, 이 원칙은 결혼 전인 청년들에게도 중요합니다.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물론 여러 현실적인 여건들도 보아야겠지만, 그와 더불어 이 사람이 나와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이겠는지, 말을 가려하는 사람인지, 또 너무 많은 기대를 내게 걸고 있는 사람인지, 같은 목표를 가지고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인지, 더 나아가 나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그런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겠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신부인 제가 보기에도 부러워할만큼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거룩한 혼인의 신비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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