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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7,15) 그를 그 어머니께 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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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는별아저씨 작성일18-09-18 16:26 조회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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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한 과부의 슬픔에 다가가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과부가 외아들을 잃었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상실의 상태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하며 그 관을 뒤 따른다 해도

이제 과부는 홀로 삶을 견디어 가야 합니다.

이제는 물밀듯이 밀려들어올 고독함과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기적이나 신앙을 갖게 됨에 대해 묵상하기보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우리의 고독, 특별히 홀로 남은 이들의 아픔으로 돌아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간혹 신문이나 주위에서 전해주는 소식 가운데서

홀로 사시는 노인 분들이 돌아가신지 1주 뒤에 혹은 한 달 뒤에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곤 합니다.

 

오늘날 도시화와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이 문명의 혜택과 함께 고독혹은 소외라는 저주의 한 단면도 겪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뒤 한참 지난 뒤에 주검이 발견되는 비극이 아니래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 특히 노인들은 쓸쓸히 자신의 운명을 접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고향에서 늙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땅을 파고 일하지만 늘 외로움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의 과부에게 죽은 아들을 돌려주었다는 표현은

가장 소중한 것을 돌려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홀로 된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명 삶을 동반해 줄 사람, 혹은 관계일 것입니다.

 

그 소중한 동반자가 살아나서 하는 것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노인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괜히 한마디 붙였다가 하루 종일 삶의 온 역사를 다 들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고,

횡성수설 하는 입담에 갇혀 마음이 답답해짐을 체험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립고 그 사람과 말하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

수많은 오늘날의 고독한 영혼들은 무엇보다도 이런 기적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이 나인의 과부에게 돌려보내 주시는 새로운 생명은 말을 하는 존재였습니다.

TV나 오디오 시스템 혹은 화려한 옷과 같은 것이 아닌 말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강원도에서 수도회의 한 신부님이 수년째 운영하고 있는

재가복지센터를 방문할 적마다 다른 많은 봉사보다

말벗하기가 가장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사람들의 혼자 있는 슬픔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해 지고 싶어 하고, 삶의 자유를 느끼며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며,

삶의 희망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개별화 되는 개인화의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잠시 착각에 빠져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는 나인의 과부이야기는

우리가 홀로 고독과 싸우는 이들에게 말을 하는 존재로 되는 기적이 되며,

그들의 삶의 동반자이자 희망이 되는 기적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많은 것, 큰 것을 해 주어야만 행복해 지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홀로 지내는 이들, 특히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께

어머니, 아버지 잘 지내고 계십니까?”라고 전하는 간단한 인사말이

그분들에게 삶의 기쁨을 돌려줄 수 있습니다.

 

과부에게 말을 하는 존재, 삶을 동반하는 아들을 돌려주는 것이 예수님의 기적이었다면

오늘날 고독함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말을 나눌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

오늘날 예수님이 이루어 주시는 기적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홀로 된 과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돌려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외로운 이들에게 소중한 이가 되어 말을 건네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특히 부모님께.

 

주님, 돌아가신(살아계신) 저의 부모님에게 저의 사랑과 감사함을 돌려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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