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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2/8] 연중 제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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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02-09 09:01 조회22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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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왕11,4-13 / 마르7,24-30>


오래전 TV에서 방영되었던 이야기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바로 2남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송완섭 씨라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군대를 제대하고 당시 나이 23세 때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는데요, 그 사고로 인해 하반신을 크게 다치게 됩니다. 이후 수차례 수술에도 불구하고 완치되지 못했고, 오히려 피부까지 손상이 되어 피부 괴사가 일어나, 결국 그로부터 지금까지 28년째 바로 눕지도 못하고 온종일 엎드려서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늘 바닥만 보면서 살게 된 것이지요.


아무렇지 않게 앞을 보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통을 안고 28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곁에 늘 함께 한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매일 길거리에서 폐지를 주우러 다니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아들을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돌보셨는데요, 83세가 되어서도 변치 않는 어머니의 그 정성이 젊은 날 불의의 사고로 삶을 비관하던 아들을 지금까지 살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냥 살도록만 한 것이 아니라, TV 속에 비친 그 모자의 모습은 어느 가족 못지않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 단란한 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만들어낸 이런 기적 같은 이야기들은 이 밖에 참 많습니다. 지체장애 1급을 앓고 있는 61세 아들을 보살피면서, 당신이 아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아들이 혼자 누워있게 될까 그것이 걱정이라는 91세 할머니의 이야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는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등, 우리는 자식을 위해 자기 삶을 내려놓는 수많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의 이교도 어머니 이야기는 그러한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줍니다. 사실 병간호를 하고 아픈 자식을 돌보기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어머니가, 그 자식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무언들 못하겠습니까? 설사, 자신이 강아지 취급을 받으면서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감을 느끼더라도, 자식이 치유될 수만 있다면, 더러운 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겠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또 수많은 어머니들의 기적 같은 자식 사랑을 떠올리며, 다음 세 가지를 함께 기억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첫 번째는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어머니들이나, 오늘 복음에 등장한 이교도 부인이나,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자식의 행복을 바라지요. 아마도 이러한 그들의 마음이 하느님께 닿는 기도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기도는 다름 아닌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식들의 선익을 위한 이 어머니들의 희생을 보고 우리가 감동받듯이, 분명 하느님께서도 감동 받으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여기에는 그들의 종교가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 아니면 여타 다른 종교인지 하는 것도 중요치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랑하는 절실한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을 울렸다는 것이겠지요.


두 번째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의 선택입니다. 오늘 이 여인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선택 대신, 자기 딸이 낫는 것을 택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어느 영화에서 등장한 “뭣이 중한디?”라는 대사가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지요. 아마도, 이 이교도 어머니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자존심도, 모욕감을 피하는 것도 아닌, 내 자식의 치유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에 집착하느라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그렇게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간절하게 자식의 치유를 청하는 그 이교도 여인의 모습에서, 당신 외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 복음은 무엇보다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을 위한 선택, 그리고 그 사랑의 원천이 되는 하느님의 사랑. 우리 모두는 누군가 사랑해야 할 사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요.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느님이 감동하실 만큼 노력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모든 것에 앞서 그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은총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당신 자신을 다 내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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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올라님의 댓글

파비올라 작성일

봄볕이 따스한 오늘은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한다. 유난히 춥웠던 지난 겨울, 긴 겨울만큼 답을 찾고 싶은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시간 성당에 앉아 기도했다.  오늘은 그 기도가 햇살과 함께 온듯하다.  마음속 부모와 자식처럼 계산할 수 도 뭐라 할 수 도 없는 사랑이 온듯하다. 지금 하느님이 그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