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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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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06-20 21:36 조회1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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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48,1-14 / 마태6,7-15>


기도와 삶은 함께 간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만큼 살고, 사는 만큼 기도한다는 말이지요. 과연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지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그 삶을 보면 어떻게 기도하고 있겠거니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내 삶이 내 기도의 바탕이 되는가 하면, 반대로 내 기도가 내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보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찌 살기를 바라시는지 엿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님의 기도를 한줄 한줄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다 보면, 이 기도가 바로 그분 삶의 요약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하느님과의 친밀함을 누리셨는가 하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당신의 활동으로 증거하셨고, 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심과 동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그분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십사 기도하시면서, 동시에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용서하셨고, 심지어 배반한 제자마저 그 발을 씻어주셨지요. 광야에서 하느님 말씀에 기대어 유혹을 물리치는 모범을 보여주셨고, 하느님과 완전히 결합된 삶으로 악을 물리치셨습니다. 과연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이자 그분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우리가 관상의 땅에 심은 것을 행동으로 수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할 때, 우리 주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그 기도가 우리 삶 안에서 구체적인 역동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의미이겠지요. 이렇게 볼 때, 오늘 복음 초반에 말씀하신 “빈말만 되풀이하는 기도”의 의미 역시 새롭게 와닿습니다. 빈말이란 아무 뜻 없이 하는 말을 일컫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말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기도 자세를 말씀하신다고도 여겨집니다. 사실 내가 하는 기도가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절실하게 기도하는 만큼, 내가 그 기도 내용을 절실하게 지향하는 것이 마땅할테니 말입니다.


빈말이 아닌, 그러니까 삶과 분리되지 않은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기도와 삶이 단순해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사치도 접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을 가르치거나 설득하려는 자만심도 내려놓고, 내 정당함을 주장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릴 때, 좀 더 단순하면서도 삶과 일치되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될테니 말입니다. 입체파 현대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 평생이 걸렸다”는 말을 했다고 하지요. 그러한 단순함에 이르는 것이 어쩌면 우리 수도생활의 여정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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