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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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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20-06-24 16:31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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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30,1-5 / 에페4,29-5,2 / 마태18,19ㄴ-22>


몇 걸음을 걷는지 평소에 세면서 다니시는 분 계신가요? 혹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몇 걸음까지 걸었는지 세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걷는 수를 세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자체를 눈여겨보는 경우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걷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는지 예수님께 여쭤봅니다. 당시 유대교의 교사들은 사람들에게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와 비교할 때 베드로가 일곱 번이나 용서하겠다고 한 것은 큰 결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18,19ㄴ-22)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용서라는 게 한 번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것을 셀 수 없이 많이 하라니, 예수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작 일곱, 일흔일곱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오늘 복음 말씀은 마치 걸음을 걷듯, 당연한 일상처럼 용서하라는 초대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용서란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내 몸에 익혀진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모든 습관의 시작이 다 그렇겠지만, 아마도 용서의 습관 역시 처음에는 횟수를 셀만큼 특별한 순간들로 기억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거듭하면서 습관이 되고, 또 내 삶의 일부가 되면, 그때는 굳이 횟수를 셀 필요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때는 하루에 일곱 번이든 일흔일곱 번이든 이제 일상이 된 용서를 삶으로 살면 될 뿐입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글에 따르면, 아기가 걸음마에 성공하기까지 평균 2천 번은 넘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기 위해서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도 대부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을 예외 없이 당신과의 친교로 불러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매일의 연습을 통해 용서와 화해가 조금씩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우리의 일상이 되도록 노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6.25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날로서, 교회는 오늘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냅니다. 사실, 전쟁의 상처,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는 남북의 갈등을 보노라면, 화해와 일치가 과연 가능하기나 한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로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4,32)라는 오늘 제2독서 말씀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과 북이 화해로 가는 길이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화해와 일치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께 희망을 두고,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민족에 필요한 은총을 주님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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