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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사순 제2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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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20-03-13 22:37 조회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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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7,14-15.18-20 / 루카15,1-3.11ㄴ-32>


오늘 복음은 ‘탕자의 비유’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복음에 따르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 가운데 자기 몫을 챙겨 떠났다가 모든 것을 탕진하게 되었다고 하지요. 돈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평판도 잃었을 것이고, 아마 건강도 해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더욱이 돼지들의 먹이를 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잃어버렸을 테지요. 이렇듯 모든 것을 잃어버린 둘째는 이제 스스로를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루카15,19)이 없다고 규정하기에 이릅니다.


첫째 아들 역시 자신을 규정합니다. 한 번도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으면서 종처럼 아버지를 섬겼다고 하는데, 그렇게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주종관계로 정해놓고, 스스로를 종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이지요.


겉보기에 첫째는 성실한 아들, 둘째는 방탕한 아들로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아들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규정했다는 면에서, 이렇듯 둘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종처럼 일하는 것이 자기에게 어울린다고 믿었던 첫째나, 죄를 지었으니 품팔이꾼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한 둘째나, 결국 아들의 자리는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규정지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지를 정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복음에 따르면, 이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껴안고, 잘 차려 입힌 뒤에, 즐거운 잔치를 벌였다고 하지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여전히 둘째는 당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또, 첫째 아들의 이야기는 아주 간결하게 소개가 되고 있지만, 그 역시 자신을 아들로 인정해주는 아버지를 새롭게 만났다고 여겨집니다. 아버지가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루카15,31)라고 이야기했을 때, 첫째의 눈이 열려 새롭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보게 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판단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판단하고 규정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내 부족한 모습 때문에 나를 학대하거나, 스스로를 종의 자리에 앉혀 위축시킬 때, 내 진짜 모습이 아닌 채로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니 말이지요. 그리고 이때, 하느님의 자녀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도망치게 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버지의 자비를 만난 두 아들이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복음은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든 같은 자비로 아들들을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 자비가 마침내 두 아들 모두를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고야 말 것입니다. 바로 그 자비의 마음이 ‘자애를 베푸시고, 우리의 허물을 모르는 체해 주시는’(미카7,18-19) 하느님의 사랑인 것이겠지요. 그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며, 자녀로 불러주시는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모든 이들이 다 그 자비를 체험하고 승복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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