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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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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20-02-05 12:13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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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왕2,1-4.10-12 / 마르6,7-13>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종이 더 진화되었느냐는 생존과 번식을 통해 가늠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생물이 살아남기에 보다 최적화되었는지, 그리고 더 많은 개체로 번성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볼 때, 진화의 정점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책, ‘사피엔스’에서 진화에 성공한 종으로 특별히 밀과 쌀, 그리고 감자를 지목합니다. 고작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되었던 잡초와도 같은 식물들이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분포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참 신비롭게 여겨집니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큰 맹수도 있고, 다른 생물보다 월등히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닌 인간도 있는데, 정작 생존과 번식이라는 측면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밀과 쌀, 감자가 모든 종 가운데서 승리자가 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몇 가지 당부를 하십니다. 그 첫 번째는 혼자 힘으로 다 하려 하지 말고, 동행하는 제자와 협력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타인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을 가져가고, 여분의 것은 챙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함 가운데 하느님 섭리에 자신을 내맡기라는 초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가 하면, 옷을 두 벌 껴입지 말라고도 하시는데, 이는 자신을 지나치게 포장하지 말고, 오히려 취약한 상태로 세상에 파견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여러 집에 머물지 말고 한 집에 머물라고 하시는 것은, 더 좋은 환경을 기웃거릴 시간에 오히려 그 자리에서 튼튼히 뿌리를 내리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당부가 어느 모로 밀과 쌀, 그리고 감자의 생존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기 힘으로만 무언가를 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수동적으로 자연의 섭리, 그리고 사람들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이 바로 이 종들의 생존방식이니 말입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힘을 키워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동물들에게 먹히는, 그런 취약함의 상태에 머물지요.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한 자리에 머물면서 싹을 틔우고 묵묵히 열매를 맺습니다. 그 결과, 아무런 힘도 없는 이 종들이 먹거리가 되어 온 인류 전체를 떠받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려서부터 저에게,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어릴 때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차츰 그 지혜를 깊이 깨달아가는 것 같습니다. 남을 누르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밥이 되어 먹히면서 오히려 다른 생명을 떠받치는 존재가 되는 복음의 방식 말이지요. 예수님께로부터 파견된 제자들로서, 그러한 지혜를 우리 마음속에 품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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