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묵상나눔
묵상나눔

[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10-14 13:39 조회23회 댓글0건

본문

<로마1,16-25 / 루카11,37-41>


지난주에 동생 수사님의 서품식 참석을 위해 스페인에 다녀왔습니다. 서품식은 수사님이 부제 실습을 한 작은 본당에서 거행되었는데,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전례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페인 글라렛 형제들과 본당 신자들이 동생 수사님을 향해 보여준 애정 어린 눈빛, 포옹, 격려의 말들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어떤 신자분은 새 신부님이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남게 하려면 누구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서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지난 4년간 그 수사님이 거기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오랜 시간이 제가 보았던 그 소박한 전례를 참으로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사실,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생명력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는 나무는 보이지 않는 뿌리에 의해 서 있고, 또 양분을 얻어 자라나지요. 또 보이는 우주 만물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의지와 힘은 사람들을 움직이고, 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키지요. 오랜 시간 보이지 않게 나눈 따뜻한 말과 행동들은 사람들을 모으고, 그 공동체를 성장케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드러나는 율법의 실행 이면의 보이지 않는 정신을 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사실, 손을 씻는 율법이 생겨난 배경에는 위생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의미도 담겨 있었지요. 바로 부정한 것에 닿았을 수 있는 손을 씻음으로써 음식을 부정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렇게 몸과 마음을 정결케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미사 때에도 사제는 예물에 손을 대기에 앞서 물로 손을 씻습니다. 그때 속으로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단순히 손에 묻은 때를 씻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히려 손을 씻으면서 제 마음을 정결케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보이지 않는 제 마음이 보이는 전례 행위를 이끌어서 매 미사가 보다 합당하고 생명력 있는 전례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말미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루카11,41)라고 하십니다. 겉으로 볼 때 똑같아 보이는 행동일지라도 그것이 어떤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살피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게 됩니다. 왜냐면 자비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자선만이 그 행동을 참으로 생명력있는 것이 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겠지요. 마치 제 동생 수사님의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이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전해져서, 그 소박한 서품식 전례가 참으로 생명력 있고, 아름답게 거행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최근에 박노해 시인의 짧은 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낮에 쓰는 모든 힘은 밤의 깊은 잠에서 나온다. 그가 하는 말의 울림은 침묵의 깊이에서 나온다.” 참으로 지혜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보이지 않는 봉쇄의 삶 안에서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추구했던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기념일이기도 하지요. 오늘 하루, 성녀의 전구 안에서 나와 내 공동체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인식하고, 이 힘을 통해 우리 일상이 보다 아름답고 생명력 있게 변화되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