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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9/9]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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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9-08 15:51 조회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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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1,24-2,3 / 루카6,6-11>


여러모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십니다. 그들이 보기에 나자렛에서 온 예수라는 젊은 예언자는, 조상 대대로 철저히 지켜온 안식일 법을 어기면서, 그러한 자신의 행동이 오히려 안식일에 합당한 것임을 반박할 수 없게 설명해냅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던 자신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았을 테고, 이 시골뜨기 예언자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생겼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병자 치유 사건은 그분이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확증처럼 사람들에게 보였을 테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결국 골이 잔뜩 나고 맙니다.


그런데 새로운 가르침을 듣고, 아픈 사람이 나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화가 나는 일이었을까요? 어쩌면 그들이 정말 화가 난 이유는, 사람들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였던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니까 늘 주인공으로 있고 싶었던 바람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율법을 해석하는 독보적인 위치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또 진리를 선포하는 스승으로 존경받아야 하는데, 난데없이 이름 없는 젊은 예언자가 나타나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이렇듯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이들 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 그러니까 몸이 성치 않아 죄인으로 여겨지던 사람을 그 회당의 가운데에 세우신 것입니다.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루카6,8)라고 말이지요. 그 결과, 늘 중심에 서 있던 이들은 회당의 가장자리로 물러나고, 천대받던 이가 그들 가운데 주인공으로 서게 됩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다고”(루카1,52) 고백한 성모님의 마니피캇이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우리를 두 가지 방향으로 묵상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는 사람들 가운데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자기중심적 경향에 대한 성찰입니다. 대화할 때 내가 중심이 되려고만 하는지, 또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기준이 늘 나의 만족인지를 돌아보게 해준다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복음은 내가 누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성찰케 해주기도 합니다. 권력자나 나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이 내 마음의 중심 자리에 있는지, 아니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내 마음을 이끌고 있는지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 가운데 세우시고 낫게 하신 것을 묵상하는 오늘,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지,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지 성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천대받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그분 마음에 우리 마음이 일치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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