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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7/7] 연중 제1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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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7-06 16:58 조회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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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66,10-14ㄷ / 갈라6,14-18 / 루카10,1-12.17-2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시려는 곳으로 제자들을 미리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곳으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필요한 것들을 잘 챙겨서 가라고 하시기는커녕, 가지고 있던 것마저 내려놓고 가라고 하시지요. 먼 길을 가면서 당연히 필요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돈이나 신발, 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챙긴 물건들에 의지하지 말고, 모든 것을 안배하고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라는 초대입니다.


물론 이 초대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1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지요.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강하다.”(1코린1,25) 결국, 인간의 방법이 아무리 더 지혜로워 보이더라도, 하느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두 갈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나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지혜로운 길과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어리석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지요. 잘잘못을 가려내어 기어이 상대의 사과를 받아내는 지혜로운 길이 있는가 하면, 조금 손해 보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용서하고 덮어주는 어리석은 길도 있습니다. 꼭 해야 하는 일만 하고 남는 시간의 여유를 즐기는 지혜로운 길도 있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희생하며 하는 어리석은 길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힘 있는 사람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비위를 맞추는 지혜로운 길도 있지만,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어리석은 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길들은 달리 말하면 복음적인 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인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그분의 길을 택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께 의지하는 것이, 그분이 만드신 피조물에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지요.


한편, 오늘 말씀은 나를 포장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말씀으로 묵상하게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 제자들에게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내려놓게 하셨다는 것이지요. 저는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사회생활을 했기에,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변호사, 검사, 의사, 교수, 벤처기업 사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부가 되었지요. 이 친구들을 가끔 만날 때가 있는데,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부를까요? 저는 그 친구들을 선생님, 교수님, 영감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거추장스러운 직함은 다 내려놓고, 그냥 이름을 부르지요. 그 친구가 무슨 돈주머니를 차고 왔는지, 무슨 명품백을 가지고 나왔는지, 좋은 신발이나 좋은 차를 끌고 나왔는지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그 친구를 만나는 것 자체가 저에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친구로 부르신 예수님께서도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들,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내려놓게 하셨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다 내려놓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바늘귀와 같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이들 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제자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하느님께 의지하며,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 파견된 제자들에게 세 가지 사명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평화를 나누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병자들을 고쳐주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묵상해볼 수 있겠지만, 각각에 대해서 이렇게 묵상하고 우리 삶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평화를 전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로만 평화를 빕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에게든, 모르는 사람에게든 조용한 미소를 보낼 때 우리 세상이 더 평화로울 수 있을리라 생각됩니다.


두 번째로 병자들을 고쳐주라는 말씀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건네라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실천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경쟁 사회 속에서 마치 전쟁터 마냥 서로를 짓누르는 이들의 각박한 마음이 치유될 수 있도록 칭찬의 말을 건네는 것이지요. 우리 마음은 참 신기해서 아주 작은 눈빛이나 말로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또 따뜻한 찰나의 눈빛과 애정이 담긴 말 한마디에 그 상처가 치유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세 번째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는 말씀은 세상이 보다 복음적인 곳으로 변모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으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세상이 더욱 정의로운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양심에 따라 용감하게 행동하고, 그러면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 사랑의 실천을 머뭇거리지 않는 것이지요. 그때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말로써만이 아니라 우리 삶으로써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일흔 두 제자의 파견은 한편으로 우리들을 파견하시는 말씀이라고 여겨집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고, 내 모습 그대로 나를 봉헌하는 삶. 그리고 사람들에게 미소를 전하고, 칭찬의 말을 건네고, 사랑의 행동을 하라는 초대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절들로서, 평화를 전하는 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제자들처럼 우리들의 이름도 하늘에 기록되고, 우리의 기쁨도 그 분 안에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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