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묵상나눔
묵상나눔

[7/4] 성 토마스 사도 축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7-02 14:32 조회50회 댓글0건

본문

<에페2,19-22 / 요한20,24-29>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닫게 되는 우리 모두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누구나 마음속에 큰 상처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서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도 있고,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긴 상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부당한 권위 행사로 입게 된 상처들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공통점은 그렇듯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 그것을 남들에게 감추려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육체에 난 상처도 그러하지만, 마음의 상처 역시 그것을 열어 보이고 누군가의 손에 맡기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 그리고 아주 친밀하다고 느낄 때만 낼 수 있는 그런 용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아픈 이야기를 오직 믿을 수 있는 친구와만 나누게 되는 것이겠지요.


예수님의 상처를 만지고자 했던 토마스 사도의 모습은, 보지 않고는 믿으려 하지 않는 의심에 찬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곤 합니다. 그래서 흔히 토마스라는 이름은 의심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토마스 사도 안에서 다른 마음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그분과 서로를 신뢰하고 친밀한 사이이기를 원하는 사도의 마음을 묵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듣고 믿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더 나아가 그분과 아픔마저 서로 어루만질 수 있는 친구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듯 예수님과 친밀한 사이가 되기를 원했던 토마스 사도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분을 자신의 하느님으로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말이지요.


토마스 사도의 이름 앞에는 어김없이 “쌍둥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서 토마스 사도의 쌍둥이가 등장하지는 않지요. 그래서 영성가들은 우리 각자가 바로 토마스 사도의 쌍둥이여야 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각자가 의심을 넘어서, 상처를 서로 만질 수 있을 만큼 친밀한 사이가 되고, 그럼으로써 그분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자 우리 의지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친밀함 안에서만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 신앙은 다른 사람이 가르쳐준 교리 지식이 아닌, 내 존재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오는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되는 것이겠지요. 성 토마스 사도의 축일을 지내면서, 특별히 우리의 신앙이 주님과의 친밀함 안에서 더욱 견고해지도록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인격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그분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은총을 이 시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