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묵상나눔
묵상나눔

[3/26] 성주간 월요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03-25 17:56 조회60회 댓글0건

본문

<이사42,1-7 / 요한12,1-11>


어제 수난 성지 주일을 시작으로 우리는 1년 중 가장 거룩한 시간 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고대하며 이 시간을 숨죽이며 보내고 있겠지요. 그래서인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집중하는 이 성주간의 시간들은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같은 1분 1초라도 거기에 담긴 피조물들의 염원과 예수님의 고뇌에 찬 사랑이 집중된 만큼, 사실 이런 무게감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등장하는 세 인물을 눈여겨보게 됩니다. 바로 라자로, 마리아, 마르타, 이렇게 세 남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위한 잔치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우선 라자로는 죽음에서 일으켜진 이로서, 사람들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증거합니다. 실제로 라자로를 보기 위해 많은 유다인들이 몰려들었고, 많이 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마리아는 순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음으로써 가장 값진 것을 그분께 봉헌하지요. 그리고 그분께 드린 이 흠숭의 행위로, 온 집은 향유 냄새로 가득하게 됩니다. 끝으로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있었다는 단 한 번의 언급에서 볼 수 있듯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 온갖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각각의 역할은 우리 공동체나 전체 교회 안에서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회개를 통해 사람들 가운데서 증거하는 삶이나, 하느님과의 친밀한 기도로 세상을 향기롭게 채우는 삶이나, 눈에 띄지 않게 묵묵히 봉사하는 삶이나, 모두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정 안에서 중요하지 않을 수 없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남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의외입니다. 하느님을 증거하는 라자로는 죽이기로 결의하고, 예수님께 흠숭을 드린 마리아는 쓸데없는 데에 낭비나 하는 여자로 빈정댐을 받지요. 또 마르타는 아무런 존재감 없이 묵묵히 일하면서 사람들의 주의를 전혀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죽음의 위협 아래 있고, 한 사람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또 한 사람은 마치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무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커녕, 오늘 독서에서 이야기하는 부러진 갈대, 꺼져가는 심지마냥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가망 없는 존재들로 보입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무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처럼 말이지요.


1년 중 가장 거룩하고 무거운 이 성주간은 아마도 이런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번 새롭게 변화되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며,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봉사하는 삶. 세상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보다 나음을 믿고, 부활을 희망하는 시간 말이지요. 이 은총의 시간을 주님 안에서 더 깊이 체험하고, 또 그럼으로써 다가오는 부활을 보다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