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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부활 제7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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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6-06 16:33 조회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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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25,13ㄴ-21 / 요한21,15-19>


사랑은 같은 근원에서 비롯되지만, 저마다 고유한 모양과 색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나 그리스어에는 우리 말과 달리,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랑을 지칭하는 다양한 단어들이 있지요. 예컨대, 잘 아시다시피, 그리스어는 욕망을 채우려는 역동의 에로스 사랑, 인간적인 우정을 가리키는 필로스 사랑, 그리고 완전한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신적인 아가페 사랑을 다른 단어로 구분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베드로는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지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이 대화가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대화에서 사랑을 지칭하는 그리스어 단어를 하나씩 살펴보면, 오늘 복음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보물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예수님과 베드로는 이 대화 안에서 하나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아가페와 필로스 두 가지 다른 색깔의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이때 쓰인 사랑은 아가페(agapao)였습니다. 그러니까, 첫 질문은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신적인 사랑을 줄 수 있겠느냐는 의미였던 것이지요. 이에 베드로는 필로스(phileo), 곧 인간적인 우정으로서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는 “제가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 정도로밖에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두 번째 물음과 응답도 이와 똑같이 진행됩니다. 신적인 사랑에 대한 물음, 그리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적인 사랑의 고백이 오갑니다.


그런데 세 번째 물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두 번에 걸쳐 아가페 사랑을 요청하셨던 예수님께서, 세 번째에는 필로스 사랑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아직 베드로가 이르지 못한 신적인 사랑의 단계가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한 그 인간적인 차원의 사랑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완전한 사랑에 이르라고 다그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께서 한 계단 내려와 인간적인 사랑을 나누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불완전한 사랑으로도 충분하다고 받아주시는 그 넉넉한 하느님의 자비 앞에서 베드로는 결국 눈물을 흘립니다. 부족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들을 돌보라고 하시지요. 양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그렇듯 부족하지만 주님께 받아들여졌음을 깨달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만이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의 자비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물음이 완전한 사랑에 대한 요청이라고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 계단 내려오셔서 나의 부족한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주시는 주님 마음을 더 묵상하게 됩니다. 신적인 완전한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깨지고 다친 부족한 그대로의 사랑을 원하시는 주님 마음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 자비에 감사하면서, 우리도 서로를 너그럽게 돌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은총을 이 시간 함께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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