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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부활 제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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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5-26 23:20 조회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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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16,11-15 / 요한15,26-16,4ㄱ>


종교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화를 주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더없이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교리적으로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정당성이 부여되면, 그 폭력적인 행동은 어느새 위대한 예언적인 행위로 미화되기까지 합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여러 시대를 거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처음에는 유다인들로부터, 그 다음에는 이교도로부터 박해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잘못된 신앙이 오히려 그들의 눈을 가려버린 나머지 진리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비단 다른 종교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우리 그리스도교 역시, 십자군 운동 때 폭력을 정당화했었고, 종교재판이나 소위 마녀사냥을 자행했던 아픈 역사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 시대 때에는 피지배 계층을 향한 폭력에 침묵함으로써, 여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대희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사과와 용서를 청하신 바 있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한 것은 잘못이며, 이를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직접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전의 유다인들과 이교도들 못지않게, 우리 역시 잘못된 신앙으로 눈이 가려진 적이 있었음을 인정하신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명분 아래 제자들을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시지요. 다시 말해서, 그들이 제자들의 증언도, 또 진리의 영이신 분의 증언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와 동떨어진 그릇된 신앙을 고집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말에 귀 기울였던 리디아처럼 그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았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마음도 진리를 향해 열려 있지 않을 때, 유다인들이나 이교도들, 혹은 과거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저질렀던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제는 폭력을 정당화해서 전쟁을 일으키거나 마녀사냥을 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신앙이 내 기준 안에서 편협해질 때, 그러니까 진리의 영이 아닌, 나의 생각으로 해석된 신앙을 고수하려 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폭력적으로 강요하게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향해 열린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내가 만든 틀이 아니라,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각과 말과 행동의 기준이 되시도록, 진리의 영께서 우리 마음을 이끄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완고하지 않고 부드러운 마음, 또 닫혀 있지 않고 개방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진리 앞에서 우리 눈이 가려지지 않도록 이 시간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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