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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부활 제5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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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5-20 11:26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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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14,19-28 / 요한14,27-31ㄱ>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 신자들에게 가톨릭 신자가 되고자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답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건네신 말씀도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말씀이었지요. 또 미사 중에 우리는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께 자비와 더불어 평화를 청합니다.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미사 중에 평화의 축복을 나누고, 또 주님께 평화를 청해 얻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우리는 평화 가운데 살고 있을까요? 전 세계 곳곳의 테러와 내전 소식도 그렇고, 북한과의 대치로 늘 불안한 우리나라의 상황도 그렇고, 무엇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또 그래서 죄책감에 가슴을 치는 우리 모습을 보더라도 평화라는 말이 그렇게 가깝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으니, 그것이 거짓일 리는 없을 텐데, 이렇듯 우리는 자주 평화와는 거리가 먼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더욱이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모습도 보게 되는데, 이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요.


우리는 평화를 이야기할 때 무엇이 없는 상태로 정의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전쟁이 없고, 두려움이 없고, 걱정거리가 없는 그런 상태 말이지요. 하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이와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무엇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있는 평화이지요. 정의가 있고, 신뢰가 있고, 희망이 있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이 있고, 또 사랑이 있는 상태. 무엇보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상태가 평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만이 온갖 환란 가운데서도 우리 마음을 산란케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풍랑으로 파도가 거센 가운데서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께 신뢰를 둘 때 안심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분명 다릅니다. 그분께서는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없애신 평화로운 상황이나 상태를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돌에 맞아 죽음에 가까이 이르는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가 그분께 신뢰를 두고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힘이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던 것이지요. 마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를 끝까지 믿어주는 친구가 있으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그런 평화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가 그렇게 늘 평화로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걱정거리가 없는 상황의 그런 평화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그분께 희망을 두고, 마침내 구원하실 그분께 신뢰를 둠으로써 얻게 되는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과 주님의 평화를 이 시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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