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묵상나눔
묵상나눔

[3/13] 사순 제4주간 화요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03-12 23:13 조회58회 댓글0건

본문

<에제47,1-9.12 / 요한5,1-16>


벳자타라는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다고 합니다. 주랑은 회랑과 비슷한 말로, 복도와 같은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에서 설명하는 벳자타 못의 구조를 다시 정리해보자면, 벳자타 못이 중심에 있고, 그 물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처럼 다섯 개의 복도가 있는데, 거기에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병자들은 물이 출렁거릴 때 그 못 속에 들어가면 병이 치유되리라는 기대감에 오랜 세월을 주랑에 누워 물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벳자타 못의 구조를 두고 어떤 교부들은 다섯 주랑이 의미하는 것은 다름 아닌 모세 오경이고, 그 중심에 있는 못은 생명의 샘, 곧 구원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볼 때, 주랑에 누워있던 모든 병자들은 전통에 따라 모세오경, 곧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에 이르고자 한 이들로 볼 수 있겠는데, 문제는 이들이 따라가는 구원의 여정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눈먼 이가 물이 출렁거리는 순간을 볼 수도 없겠거니와, 그 순간을 볼 수 있는 다른 이들 역시, 불편한 다리나, 말라비틀어진 사지로 벳자타 못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테니 말입니다. 더욱이 죄인으로 취급받던 병자들을 도와줄 성한 사람도 많지 않았겠지요. 그러니,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서른여덟 해나 앓았던 병자처럼, 긴 시간 그렇게 주랑에 누워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이렇듯 구원을 희망하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기뻐하고 감사하기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되어 죄책감에 짓눌려 있는 것이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에게, 구원의 샘이신 분께서 직접 다가오십니다. 그리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라는 말로 그 아픔을 함께해 주십니다. 그 따뜻한 공감의 말에, 서른여덟 해나 앓았던 병자는 자신의 아픔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야속한 상황을 예수님께 토해내지요. 그리고 그 말씀을 다 들어주신 예수님서는 그에게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라는 말씀으로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고, 그 병자는 믿음으로 그 생명을 받아 함께 누립니다.


이렇게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사람들을 손수 만나서 당신 생명에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이 만남을 안식일을 비롯한 그 어떤 율법도 막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마치 제1독서에 나오는 성전 오른쪽을 통해 거침없이 흘러나온 물이, 그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을 살아나게 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주십니다. 이제 생명의 물은 더 이상 율법으로 감싸인 벳자타 못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 어디에나 흘러넘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안에 갇혀 계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러한 예수님을 모시고 세상에 파견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하셨던 것처럼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예수님의 생명에로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겠지요. 그러니 우리가 가는 곳마다 생명의 물이, 예수님의 생명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겠습니다.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