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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3/9] 사순 제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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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03-08 14:27 조회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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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14,2-10 / 마르12,28-34>


율법 학자의 대답을 슬기롭게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선언하십니다. 도대체 어떤 대답을 했기에 그렇게 예수님의 인정을 받았는지 그 율법학자의 말을 찬찬히 보면, 사실 특별한 내용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과연 옳은 말씀입니다.”라고 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는 그분 말씀에 동의함으로써 슬기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슬기로움이란 다름 아닌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수용성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내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듣고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노력이 우리를 슬기롭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사실 하느님 나라도 결국 하느님의 뜻이 받아들여지고 현실화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나라에 가까이 있는 이들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뜻에 동의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슬기로운 이들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아울러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째 계명, 곧 사랑도 수동적인 방식으로 시작됨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듯, 우리는 사랑에 빠집니다. 아주 수동적인 표현이지요. 내 의지로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얼핏 내 눈에 들어온 아름다움과 매력이 나를 이끌고 가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곧, 사랑은 나에게 다가온 아름다움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는 받아들임에서 시작되고, 그 아름다움을 내가 닮아가고 결국 일치되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역동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먼저 선물로 주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에 빠짐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고 그분 모습으로 점차 변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을 닮아가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듯 사람들과 세상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첫째 계명은 결국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세상 안에서 확장시키라는 초대의 말씀으로 알아듣게 됩니다.


회개와 변화의 여정을 걷고 있는 이 사순시기에, 우리가 더 많이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사랑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로 변화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이들, 더 슬기로운 이들, 더 많이 사랑에 빠지고 그분을 닮아가는 이들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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