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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2/28] 사순 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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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02-27 22:35 조회10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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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18,18-20 / 마태20,17-28>


탈무드에 나오는 짧은 글을 하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명성은 자기 스스로 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남이 자연적으로 주는 것이어야 한다. 명성을 찾아서 뛰는 자는 명성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나 명성으로부터 도망치는 자는 명성에게 붙들려진다.” 과연, 남들 위에 올라서서 인정받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보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이 묵묵히 맡은 바를 해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인정받고, 명성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왕으로 오실 예수님의 옆자리에 앉기를 바라는 두 제자와, 그들의 시도를 보며 불쾌함을 느끼는 열 제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남들보다 위에 올라서 명성을 얻고, 사람들로부터 우러름 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엿보게 됩니다. 어느 모로 볼 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 덕분에 명성을 얻고,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사실 철학자 존 듀이가 말했듯, “사람은 누구나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자리에 올라서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야 지극히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단지 어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사람, 그리고 높은 사람이 되는 길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남는 것이겠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그 어떤 비유도 사용하지 않고 아주 명확하게 그 길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섬김의 길이지요. 곧, 예수님의 기준에 따르면, 겉모습이 누가 더 나은지, 누가 똑똑한지, 힘이 센지, 많이 아는지, 혹은 누가 규칙을 더 잘 지키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섬기는 삶을 사는지에 따라 첫째가 판가름 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열 두 제자는 하느님의 백성, 곧 전체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섬김에 대해 말씀하신 복음의 후반부는, 우리 교회 전체를 향해 하신 말씀으로 알아듣게 되기도 합니다. 곧, 우리 교회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세도를 부려서는 안 되고, 오히려 섬기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라 종이 되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쳐야 할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묵묵히 섬기는 교회가 될 때, 우리 스스로 명성을 얻으려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세상이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알아보고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참된 명성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공동체적인 차원에서나 섬김을 통해 첫째가 되는 예수님의 기준을 참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렇게 실천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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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파비올라님의 댓글

파비올라 작성일

이 글을 읽다보니 섬김의 의미가 새롭게 각인되는듯 합니다. 무릇 한국의 보름날 마을에서 진행되는 절차의 하나로 (현재는 일부 마을에서만 찾아볼 수 있지만) 동제에서 이런현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하느님이 아닌 마을신을 모시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닮은 모습이 있는 것 같아 적어봅니다. 동제를 지내기 위해서 신을 모실 '제관'을 마을에서 뽑는데, 이 과정에서 제관은 뽑는 기준이 굉장히 까다로웠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누가 하고싶다고 나선다해서 될 수가 없습니다. 많은 공동체사람들이 인정한 기준에 의한 엄격한 절차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닌만큼이어서인지 재물이 얻어지는 것도 아님에도 그것을 영광되게 생각했습니다. 묵묵히 섬기는 교회의 모습이 한국 공동체속에서 뿌리깊게 소중히 여겼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