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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사순 제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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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4-01 19:16 조회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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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47,1-9.12 / 요한5,1-16>


‘벳자타’라는 연못의 이름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이 연못은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사람들이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찬찬히 보면, 그 자비가 참 인색한 자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앞에 치유의 연못이 있는데, 그것을 보면서도 거기까지 가질 못해서 38년을 누워있는 사람에게, 그 연못은 결코 넉넉한 자비의 샘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벳자타는 불가능한 것에 희망을 주어 오히려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소위 ‘희망 고문’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오늘 복음에서 생략된 4절 내용에 따르면, 이 벳자타의 물이 출렁거린 다음 맨 먼저 못에 내려가는 이가 건강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맨 먼저 그 물에 들어가기 위해서 누군가를 밀쳐내야만 하는 그 상황이 자비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집니다. 내가 낫기 위해서 다른 병자들이 낫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상황, 내가 자비를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곳에서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자비라는 이름의 공간에서 말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벳자타’, 곧 새로운 ‘자비의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분에게서 나오는 자비의 물은 연못에 갇혀 있으면서 배타적으로 선택된 사람들만 만질 수 있는 그런 물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건강해지고 싶으냐?”(요한5,6)라고 말을 건네고, 자비의 손길을 내미는 물입니다. 마치,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세상 구석구석에까지 이르러 온갖 생물을 살아나게 하듯이, 그분의 자비는 온 세상을 향해 흘러넘칩니다. 댐에 금이 가면 그 사이로 터져 나오는 물줄기를 막을 수 없어 결국 댐이 무너지고 말지요.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그 인색한 벳자타 못의 경계를 허무십니다.


한편, 오늘 치유를 받은 그 사람은, 나중에 물러가서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을 밀고합니다. 그리고 그 밀고 이후로 예수님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지요. 그래서 이 사람은 성경에서 치유를 받은 모든 이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인물로 기억되곤 합니다. 치유를 청한 적도 없고, 믿음을 고백한 적도 없으며, 심지어 예수님을 밀고하기까지 했던 사람이 치유를 받았으니 말이지요. 그렇게 자비의 샘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물은 모든 경계를 넘어섭니다. 안식일과 같은 법도, 자비를 배신으로 갚는 배은망덕도, 고난과 박해도 그 자비의 샘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자비가 예외 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선포하는 복음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 전반에 걸쳐 계속되는 이 선포는, 또한 그분을 따르는 우리에게 요청되는 바이기도 하겠지요. 은혜로운 사순시기를 보내며, 무엇보다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고, 또 우리도 그분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로 다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경계 없는 새로운 벳자타 연못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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