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묵상나눔
묵상나눔

[3/7]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3-06 20:44 조회28회 댓글0건

본문

<신명30,15-20 / 루카9,22-25>


셰익스피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비겁한 자는 여러 번 죽지만, 용기 있는 자는 오직 단 한 번 죽는다.” 목숨을 여럿 가진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이 말은 듣는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숨이 끊어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답지 못한 삶을 살 때, 혹은 원치 않는 일을 누군가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할 때, 그럴 때 우리는 존재 자체가 무시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습이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바에 맞추어 타협하고 살 때,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 나를 죽이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카9,23)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고통과 수난을 뜻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명과 이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받아들이라는 뜻을 넘어,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부여하신 소명에 충실하라는 초대라고 묵상하게 됩니다. 세상이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각자의 참모습을 삶으로써 생명을 선택하라는 요청으로 알아듣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람들의 시선에 나를 내맡기고, 거기에 맞게 나를 포장하며 살 때, 어쩌면 세상의 찬사를 받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진짜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마음속에 오래 남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9,25) 저희 글라렛 성인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의 회개를 이끌었던 이 말씀은, 온갖 세상의 찬사를 받아 누린다 해도, 하느님께서 지으신 내 모습이 아닌 거짓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죽음의 길이 아니라, 자기 소명을 따르는 길, 곧 생명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주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우리 앞에 생명과 행복, 그리고 죽음과 불행을 내놓으십니다. 우리가 늘 생명과 참 행복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정화의 여정을 걷는 이 사순시기 동안, 온갖 세상의 목소리들을 걸러내고 하느님의 음성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알아들은 바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생명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이 시간 마음 모아 기도합시다. 아멘.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