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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2/3] 연중 제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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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2-02 12:24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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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1,4-5.17-19 / 1코린12,31-13,13 / 루카4,21-30>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지난 해를 돌아보기도 하고, 또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무언가를 결심하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쇄신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보다 더 많은 쇄신의 기회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대림 때 전례력으로 새해를 맞이했고, 또 1월1일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했지요. 그리고 이제 또 얼마 남지 않은 설을 기다리며 또 한번의 새해 맞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무언가 새로이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묵은 것을 버리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로서, 박노해 시인이 원숭이를 잡는 방법에 대해 쓴 글을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토착민들은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쌀을 넣어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는 것만으로 원숭이 사냥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원숭이가 일단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고 쌀을 가득 움켜쥐면 자루에서 손을 뺄 수 없게 되는데, 그 맛있는 쌀을 놓기 싫어서 사람들이 올 때까지 자루에 손을 넣은 채로 있다가 결국 잡히고 만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짧은 글 마지막에 박노해 시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움켜진 손을 펴라. 놓아라. 놓아버려라. 한 번 크게 놓아 버려라.”


쥐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지 않으면, 거기에 계속 묶여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마련이지요. 예컨대 짐이 한 가득 들어있는 가방에 새 짐을 넣으려면, 먼저 그 가방을 비워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겠습니다. 비단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식과 생각, 그리고 가치관이나 신념 같은 것들도, 이미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무언가 새로운 것이 머리속에 비집고 들어오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생각이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때는 먼저 그 생각들을 한 번 크게 놓아 버리고, 다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 별 볼일 없는 고장에서 태어난 이름 없는 청년. 그들의 머리 속에 예수님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겠지요. 그러니 그러한 선입견을 버리기 전에는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결국 선입견과 편견으로 가득차서, 한 발자국도 양보할 수 없이 완고해져 버린 것이지요. 복음 마지막을 보면, “그들이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루카4,29)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밖으로 밀쳐내 버리는 그들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에 묶여서 새로운 것을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새해를 준비하며 듣는 오늘 복음을 통해 내 안에 놓아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로부터 못 헤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내가 옳다고 믿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다른 생각은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놓아버리기로 결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롭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움으로 들어서기 위해서 말이지요.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마음 속에는 없애야 하는 개가 두 마리 있다고 합니다. 흔히 똥개를 좀 고상하게 ‘분견’이라고도 하고, 안내견, 투견 등등 개를 일컫는 말에는 ‘견’을 붙이지요. 마찬가지로 이 두 마리 개도 ‘견’으로 끝나는데, 바로 ‘선입견’과 ‘편견’이 그것이라고 합니다. 이 개들을 마음 속에서 쫓아버리지 않고는 자유로울 수 없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잘 키워야 하는 개도 한 마리 있다고 하는데, 이 개는 이름이 좀 길어서 ‘백문이불여일견’입니다.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들어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체험함으로써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겠지요. 만일 오늘 복음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선입견과 편견 없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직접 보고 체험했더라면, 그들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새해를 맞는 우리들이 과거에 가졌던 생각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움에 마음을 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부터, 이들의 가능성을 인정해주고, 더 나아가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바로 이 사람이 예수님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다면, 올 한해 참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장 가까운 내 가족들을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살아갈 때, 어느새 우리 가정이 점차 성가정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겠지요.


이를 위해서 오늘 제2독서 말씀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고 하지요. 움켜쥔 것을 놓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놓아 생긴 그 빈 자리에 더 좋은 것을 주시리라는 희망이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해주겠지요. 또 내 바로 옆에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결국, 믿음과 희망, 사랑을 간직할 때 새로운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다는 것입니다.


설을 앞두고 듣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묵은 것을 놓아버리고 새로운 것을 채우고, 또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그 진가를 새롭게 바라보기로 다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이 날로 자랄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필요한 은총을 주님께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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