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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2019년 1월 30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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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들바람 작성일19-01-29 23:25 조회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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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 10,11-18; 마르 4,1-20 

  

말씀이 내 삶의 기준-준칙이 되고 있는가?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가? 혹은 명언이나 선언으로 머물러 있는가?

 

우리는 말씀에 감동을 받고, 말씀에 따라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 삶은 말씀에 크게 영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씀이 삶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고 겉돈다.

 

무질서한 욕구로 길들여진 우리의 습성이 말씀의 침투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지로 욕구를 제어해 보려고 한다. 욕구를 이성에 따라 통제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많은 경우 이런 노력은 실패한다. 바오로 사도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한다고 고백한다. 무의식 안에서 이미 습성화된 무질서한 욕구는 인간의 자기 발견을 통해서 극복할 수 없다. 답은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욕구는 본래 선하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질서한 본성 곧 창조주의 의지와 결별한 욕구, 욕망은 악하다. 말 그대로 무질서는 창조주의 뜻에 역행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질서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는 원죄라고 말한다. 곧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부한 것이 바로 원죄이고, 무질서로 나아가려는 경향성이 원죄이다.

 

그렇다면 원죄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달리 말하면 욕망의 무질서는 어떻게 바로 잡아질 수 있는가?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알려주신다. 하느님과의 일치된 삶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뜻을 찾고 행하는고자 한다면 우리의 무질서한 욕구와 욕망으로 굳혀진 습성은 하느님의 질서에 적응하는 가운데 변화를 격게 되고 더 이상 하느님과의 결별을 원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진보한 영혼 안에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습성이 생기게 되어 스스로에 당황하지 않고 질서 있는 삶을 살게 된다.

 

하느님의 뜻을 곧잘 실천하는 이와 같은 영적 진보를 이루기 위해 향주삼덕을 양육하는 것이고, 향주삼덕을 양육하기 위해 수도자들은 복음삼덕을 추구하며, 복음삼덕에 깊이 젖어들고자 고독과 침묵 그리고 단순, 기도, 일을 일상 안에서 실천하도록 권한다.

 

요한의 고백처럼 예수는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우리 삶 안에 살아 계시기 위해 매일의 순간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께 의탁하는 이들이 누리는 평화로부터 잉태된 그 희망이 우리로 하여금 오늘을 살게 해야 한다. 그러한 희망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지치지 않고 십자가를 향한 자기부정의 길로 이끌어줄 것이다. 십자가는 무질서한 욕망이 죽고, 인간이 창조주의 의지에 따라 그 완성에 이르는 구원 역사의 끝이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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