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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2/21] 사순 제1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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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02-20 17:22 조회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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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3,1-10 / 루카11,29-32>


요나 예언자가 심판을 예고하여 사람들을 회개로 이끈 니네베는 아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그리고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이스라엘의 적국이었지요. 그러니 이 성읍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 예언하도록 부름 받은 요나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처음 요나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렸을 때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배를 타고 도망치려 했던 것도 아마 이런 이유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시리아라는 원수의 나라가 구원받길 바라는 마음보다, 그들이 멸망했으면 하는 미움의 마음이 더 컸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큰 물고기 배속에 사흘을 머문 후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사실, 오늘 독서 말씀 바로 앞에 나오는 요나 예언서 2장은 물고기 배속에서의 요나의 기도를 전해주는데, 그 마지막은 “구원은 주님의 것입니다”(요나2,10)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미움이나 불편한 마음보다,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요나4,2) 하느님께 구원의 주도권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 뜻에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지요.


그래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얻지 못할 것”(루카11,29)이라는 오늘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보다 오히려 요나 예언자의 회개를 더 깊이 바라보게 됩니다. 사실 한 예언자가 도심을 돌아다니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외치는 것 자체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 예언자의 표징 전부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하느님 자비의 마음을 닮아 원수마저 구원되기를 바라게 된 한 사람의 마음이 더 근원적인 표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비의 마음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고,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일컬어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11,32)고 말씀하실 때, 그 크다는 의미 역시 힘이 세거나 능력이 출중하다거나 하는 의미일 수는 없을 듯합니다. 큰마음, 그러니까 누구도 예외 없이 다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크시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큰 징표, 곧 요나 예언자의 징표가 지금도 사람들을 회개로, 구원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우리들도 그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닮아 요나 예언자의 징표가 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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