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묵상나눔
묵상나눔

[12/24] 주님 성탄 대축일 - 밤 미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12-23 15:33 조회71회 댓글0건

본문

<이사9,1-6 / 티토2,11-14 / 루카2,1-14>


언젠가 TV 광고에 “수고한 당신 떠나라”라는 문구가 생각이 납니다. 수고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어떤 선물처럼 여행을 떠나라는 그 광고가 인상적이었지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이렇게 되뇌어 봅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한 당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라!” 고된 세상살이, 그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노력했던 순간들, 실수하고 부끄럽고 죄송했던 순간들, 그래도 다시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선 많은 순간들, 또 관계 속에서 경험했던 갈등과 아픔들. 그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이 한 해를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자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참 수고 많았다라고 칭찬해주시고, 또 아기 예수님이라는 분에 넘치는 선물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을 주시는 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분에 넘치는 선물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통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면, 여러모로 고민하고 가장 좋은 것을 사거나 만들어 주려고 노력을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하느님은 참 통이 크시다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그러셨고, 매 미사의 성찬례 때도 그렇고, 성탄도 그렇고, 뭐 좀 선물을 하려 하시면 좋은 것을 골라 사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냥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아낌없이 주시니 말입니다.


그래서 매년 맞이하는 이 성탄이 정말 놀라운 신비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몸소 피조물인 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신비 말이지요. 오래 전, 우리가 머물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그 안에 살게 하셨던 분이, 이제 그 세상 안으로 당신마저 들어와 기꺼이 함께 머물고자 하신 것이죠. 그렇게 하늘과 땅이 만나고, 창조주와 피조물이 벗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강생의 신비 앞에 우리는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로 오신 예수님께서 정작 사람들에게 전폭적으로 환영을 받지는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 바로,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라는 부분이지요. 우리에게 이 세상을 마련해주신 하느님께 우리는 방 한 칸 내어드리지 못한 셈입니다. 그분이 머물 자리를 내어드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인 수녀님은 “구유 앞에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천년이 지나고 또 천년이 지나도록 / 당신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오시건만 /

당신을 외롭게 만든 건 / 정작 우리가 아니었습니까 /

누우실 자리 하나 마련 못한 건 / 바로 우리가 아니었습니까.”


또 미국 교회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고, 현재 시복 절차 중에 있는 풀톤 쉰 대주교님께서는 당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역사의 두루마리에 최후의 한 글자까지 기록이 끝났을 때 가장 슬픈 구절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여관에는 방이 없었다.’는 말일 것이다.” 이해인 수녀님이나, 풀톤 대주교님이나 우리를 찾아오신 창조주께 자리를 내어드리지 못한 우리들 모습에 대한 반성을 통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을 맞이하면서는 당신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시는 하느님께 얼마나 자리를 잘 내어드리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별 다섯 개짜리 번듯한 호텔방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오시는 예수님을 뉘일 수 있는 구유는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편으로 이미 하느님께 자리를 많이 내어드리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집안에 기도하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십자가와 성모상 등으로 거룩한 공간을 만들어, 하느님께 공간을 내어드리고 있지요. 또 주일과 대축일을 거룩하게 보내고, 하루 중에 짧게라도 기도하면서 그 시간을 하느님께 내어드립니다. 또 자주 마음속에 하느님을 떠올리며 각자의 마음속에 그분을 위한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또 우리 마음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께 구유를 마련해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더해 하나 더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다른 존재로 오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운데 한 분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지요. 언젠가 예수님께서는 가장 가난한 이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시면서, 가장 가난한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당신께 해준 것이라 말씀하기도 하셨으니,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드린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게 우리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함을 의미한다고도 여겨집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이들에게 나의 공간과 시간과 마음을 나누어주고, 그들에게 내 자리를, 그러니까 그들이 쉴 수 있는 작은 구유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그 아픔을 보듬어주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해주는 것. 상대를 판단하고 시기 질투하기보다, 그 모습 그대로 존중해주고 성장할 수 있기를 마음으로 빌어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성모님께서 당신 뱃속에 하느님의 자리를 내어드리셨던 모범을 따르는 것임과 동시에, 마구간 안에 하느님께서 머리를 두실 작은 구유를 마련해 드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이 성탄의 의미도 온전히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사로서 저의 꿈과 비전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늘 마음속으로 그 나라를 꿈꾸지요. 그렇게 꿈을 꾸면서 떠올리는 이미지들 가운데 두 가지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말씀과 성체를 모신 사람들 가운데서, 성체 조배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사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다 성체를 모신 감실이지요. 우리가 서로를 감실처럼 여기고 소중히 대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상상해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신 이들 가운데서, 구유에 계신 예수님께 경배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바로 우리 안에 오신 가난한 모습의 하느님을 찾고, 미사 시작 때 구유예절을 하던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들 가운데 오신 하느님을 참으로 깨닫고 고백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었노라고, 그래서 하늘과 땅이 참으로 만났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전례 안에서 특별히 맞이하는 이 미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 안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 예수님께 기꺼이 구유를 내어드리고, 우리와 함께 머무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