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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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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11-11 14:36 조회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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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1,1-9 / 루카17,1-6>


오늘 성당에까지 몇 걸음을 걸어오셨는지 기억하는 분 계신가요? 세는 분도 없겠지만, 설사 세었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걷는 발자국 수를 기억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걷는 것은 어떤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기에, 굳이 그것을 기억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물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의 경우라면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특별하게 보고 기억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커서 걸음마를 다 배우고 아무렇지 않게 걷기 시작하면 더는 그 발자국 수를 세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한 습관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것을 굳이 횟수까지 세면서 기억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17,4)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하기도 어려운 용서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해주라는 예수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 당시 유대교의 교사들은 사람들에게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와 비교하더라도 예수님의 기준은 정말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하루에 일곱 번이나 잘못할 정도면, 이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나를 해코지하려는 의도가 의심될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때마다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정작 일곱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오늘 복음 말씀은 마치 걸음을 걷듯, 눈을 깜박이듯, 그렇게 당연한 일상처럼 용서를 생활화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용서는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내 몸에 익혀진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모든 습관의 시작이 다 그렇겠지만, 아마도 용서의 습관 역시 처음에는 횟수를 셀만큼 특별한 순간들로 기억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거듭하면서 습관이 되고, 또 내 삶의 일부가 되면, 그때는 굳이 횟수를 셀 필요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때는 하루에 일곱 번이든 일흔 번이든 이제 일상이 된 용서를 삶으로 살면 될 뿐입니다.


물론 그 습관을 만드는 것이 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안에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정작 그 마음을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것은 어려울 때가 많으니 말입니다. 어떤 때는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마치 큰 기적처럼 느껴질 때마저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하고 싶은 그 작은 마음, 아직 행동으로 연결될 만큼 크지 않아서 마치 겨자씨 한 알처럼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마음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씨앗이 점점 자라듯, 결국 그 마음이 커지고 마침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늘 희망 안에서 우리 마음속 용서의 씨앗이 잘 자라날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 아버지 하느님을 닮은 자녀로서 더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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