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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11/5]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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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8-11-04 15:59 조회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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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2,1-4 / 루카14,12-14>


미국 대도시에는 잘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면에 노숙자들도 참 많습니다. 제가 잠깐 있었던 시카고의 도심지에도 한 블록을 걷다 보면 최소 두세 명 이상의 노숙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특히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나 성당 주변에는 그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 간혹 도심지 성당에 갈 일이 있으면 꽤 많은 노숙자들을 지나쳐야만 했고, 또 어떤 때는 몇 달러라도 그들 손에 쥐여주기도 했었지요. 그럴 때마다 그분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빈다고도 하고, 또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도 하는 등 축복의 말을 저에게 해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나눔을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그런 축복의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흐뭇해지곤 했었지요.


그러던 중에 그 도심지 성당 공동체에 살던 프란치스코회 신학생 수사님과 그 성당 앞을 같이 지나다가, 그 수사님이 노숙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사님은 노숙자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면서 정말 친구 대하듯이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전에 몇 달러를 주고는 뿌듯해하던 제 모습과 너무 비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 수사님과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수사님이 노숙자들을 한 사람씩 식당에 데려가서 종종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미국과 우리의 상황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 수사님의 따뜻한 마음이 저에게는 큰 울림을 주었고, 그 계기로 저도 용기를 내어 그 수사님처럼 그분들과 몇 차례 식사를 함께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느낌보다 누군가와 동등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우정을 나누는 느낌이 훨씬 더 소중하구나 하는 것을 느껴볼 수도 있었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잔치에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차원을 넘어선다고 여겨집니다. 단순한 자선이었다면 음식을 주거나 돈을 주는 것으로 끝났겠지요. 하지만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은 동등하게 그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 더 나아가 기꺼이 삶을 함께 나누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제1독서에서 이야기하듯,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누는 사람”(필리2,1), 또 “이기심과 허영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사람”(필리2,1)이 되기로 작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지요. 도움을 주는 분으로만 머물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기꺼이 삶을 나누기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결국 당신을 닮은 자녀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느님, 또 우리와 더 일치되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초대로 알아듣게 됩니다. 과연, 어떤 보답을 바라기보다, 더욱 그분과 일치되어 가는 기쁨을 우리가 깊이 깨닫고 잘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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